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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 뉴스]/생활 & 문화

어느 미국인의 나이를 뛰어넘는 로맨스

by 네 오 2009. 3. 14.

 지난 주말 나는 우연히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베스트 블로거 기자의 방에서 나이 60에 사랑하는 여인이 생겼다네 라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그 글을 읽고 여러가지 생각이 밀려와서 오늘은 중년을 훌쩍 넘긴 어느 미국인의 로맨스 한 토막을 소개함으로써, 서로 사랑을 함에 있어서도 나이와 관련된 한국 사회의 보수성(?!)과 함께 극명하게 대비되는 미국 서부...특히 캘리포니아의 자유로운 문화를 한번쯤 논하고 싶어져서 펜을 들었다.

 

 글쓴이가 사귄 미국인 중 에드라는 친구는 한국 나이로 올해 80이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나서 사귈 당시엔 그는 15년전 자신의 아내를 자궁암으로 잃고 현재는 혼자서 살며 주말이 되면 자신의 손녀인 슈나이어를 종종 봐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에드와 그의 손녀 슈나이어의 모습.

 

  그러나 그와 좀더 친해지고 같이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지자 내가 몰랐던 많은 부분들이 보였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글로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과의 열렬한 로맨스였던 것이다...

 

  여기서 잠시 부연하자면, 글로리아는 올해 75살로 그녀 역시 20년전 남편을 폐암으로 잃은데다가 10년전에는 자신의 딸마저 간암으로 잃은 뒤, 그 슬픔을 잊고자 오로지 일에만 매달려서 살아 오다가 정년을 훌쩍 넘긴 뒤, 혼자서 여행을 다니기도 하고 각종 모임에 참석해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재미로 살아 오다가 우연히 낚시 모임에서 에드를 만났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글로리아나 에드는 종종 과연 이 세상이 진정 진보한 것인가라는 사뭇 철학적인(?!) 물음을 내게 던질 때가 있다. 세상은 발전하고 과학과 의학 기술은 크게 향상된 듯 한데 암으로 죽는 이들은 여전히 계속 늘고 있으니까 하는 말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서로가 비슷한 아픔(?!)을 가지고 있고 연배도 얼추 어울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서로를 이해하고 남다른 애정이 생기면서 같이 있고픈 마음이 커진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보이는 모습은 한국 같았으면 과연 주변인들의 반응이 어떻게 나올지 심히 궁금한...말 그대로 닭살스러움(?!)의 결정판이었다고나 할까...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구글 이미지

 

 우선 서로가 좋아한다는 과감한 애정 표현은 둘째치고 이런 사실을 자연스럽게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있었는데 대충 이런 식이다. 글로리아는 거의 매주 토요일 자신의 아들 내외와 손자를 불러서 저녁을 함께 하곤 하는데, 그 자리에는 항상 에드가 있으며 더불어서 글쓴이도 에드의 절친한 친구(?)라는 자격으로 함께 초대를 받아 그 사실을 뒤늦게서야 알게 되었었는데, 가족들의 말을 들어보니까 둘은 만난지 벌써 3년이 다 되어 가고 있으며 비단 가족 모임뿐만이 아니라 공식적인 모임등에도 동반 참석을 한다는 것이었다.(글쓴이가 가족들과 여러 대화를 하면서 짐작하기로는 아마도 글로리아가 자신의 딸이 일찍 세상을 떠나서 남아있는 자신의 아들 내외에게 더욱더 각별하고 그러다보니 매주 토요일 가족과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구글 이미지

 

 그 자리에서 참으로 흥미로운 것은 글로리아의 가족들이 아무 스스럼없이 에드를 대해서 이런 전후 사정을 전혀 모르는 외부인이 보았다면 아마도 십중팔구 에드를 글로리아의 남편이나 가족중의 한 명쯤으로 생각했으리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렇게 가족간의 파티가 끝나고 모두가 돌아가도 종종 에드는 글로리아의 집에 머물며 같이 잠자리도 한다는 사실을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분명히 알게 되었다. 또한 지난 늦가을에는 시애틀과 캐나다 벤쿠버 등지로 둘만의 여행을 떠난다며 집 좀 보아 달라고 하도 부탁을 하길래 약 1주일간 에드의 집에서 혼자 머문 적도 있었으며 , 종종 그들과 친구들이 여는 potluck party( 음식을 각자 분담해서 준비하고 함께 모아서 다같이 나눠먹는 파티 )에 초대를 받았고 파티가 끝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예외없이 열렬한 포옹과 키스를 주고 받으며 사뭇 요란스럽게(?!) 작별인사를 하는 두 사람을 지켜 보면서 묘한 감정을 느껴야만 했었는데 아마도 이런 것이 문화적 충격(?!)이 아닐까 싶다... 

 

 미국인들이 자주 여는 potluck party의 모습.

 

  그러면서 글쓴이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만약 한국에서 이 정도로 열렬히 사랑하는 모습을 나이드신 분들이 보였다면 주변의 반응이 과연 어땠을까...지금은 한국 사회도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필경 두 분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자못 의외라거나, 전후 사정을 알았다면 축하를 하면서 무슨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것이라고 나름 단정(?!)을 짓지 않겠는가...당시 나도 에드에게 넌지시 물어 보았었다. 글로리아가 그렇게 좋으냐고...그랬더니 에드 말이 자신의 아내와 사별한 이후 글로리아만큼 자신과 마음이 통하고 이해를 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난 이렇게 말했었다. 그렇다면 둘이 결혼을 해서 남은 평생을 함께 지내지 그러느냐고 말이다. 내 딴엔 그게 아름다운 결말이라고 생각했으나 에드의 발언은 정말 나의 사고를 크게 뒤집어 놓고 말았었는데 대충 옮겨보자면 이런 식이다...

 

  에드가 말하길, 사랑에 나이가 어디 있냐는 말과 함께 젊은 사람들이 서로 좋아하고 사귄다고 해서 모두가 반드시 결혼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냐는 말을 한다. 사귀다가 서로 헤어지기도 하고 또다른 누군가를 만나기도 하고 그러다가 정말 마음의 결심이 서면 결혼도 하는 것이라며 꼭 나이가 들어서 사랑을 하고 두 사람의 관계를 주위의 모두가 알고, 그래서 결혼을 해야만이 아름다운 결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말에 신선한 충격(?!)을 느끼면서 나름 오픈 마인드를 지향한다는 글쓴이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무너졌던 것이다.

 

 솔직히 글쓴이는 가끔 외국의 영화에서 노인들의 사랑을 정말 멋지게 다루는 모습을 보노라면 저것은 그야말로 영화의 한 장면이겠거니 생각했었다.

 특히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이란 영화가 자주 떠올랐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한국 영화 "죽어도 좋아"가 떠오르고 두 영화의 이면을 생각하니까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 차이는 사랑함에 있어서도, 특히 나이를 따짐에 있어서는 정말로 차이가 많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구글 이미지

 죽어도 좋아의 한 장면 ⓒ구글 이미지

 

 

 70이 넘은 노인들의 사랑과 성(性)을 말한 한국 영화 '죽어도 좋아'는 몇 차례의 상영 불가라는 판정끝에 몇몇 장면(오럴 섹스와 성기가 나오는 장면)을 삭제하고서야 우여곡절

 끝에 우리네 극장가에서 상영을 할 수 있었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극명히 엇갈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노인들의 삶과 사랑을 잘 그려냈다는 호평을 받은 수작임에도 불구하고 현실

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지 못한 관객들(?!) 때문인지 흥행에서는 그다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던 것이다.

 

 

 반면,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은 제법 관객이 극장에 들었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글쓴이도 당시엔 그렇게 미국 노인들의 사랑과 성(性)은 왠지 연륜이 느껴진다

며 로맨틱하고 멋지게 보았고, 우리네 노인들의 사랑은 어쩐지 상당히 어색하고 새삼스러운 일처럼 느껴졌었는데, 미국에서 살다 보니까 영화는 미국인들의 사고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었으며 이곳의 사람들도 그렇게 받아들이기에 그 분위기와 정서가 자연스럽게 스크린 속에 녹아 들어서 우리에게도 전달된 것일뿐이었음을 이성이 아닌 마음으로 깨

았고나 할까...

 

   

  그런 측면에서 글쓴이도 이성적으로야 미국이 한국보다도 훨씬 자유분방하고 애정 표현을 과감하게 하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젊은 청춘 남녀의 상황으로만 한정지어서 본 것이 아닌가하는 반성 아닌 반성을 이번 기회를 통해서 다시한번 하게 된다.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배려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이 또 있겠는가...사랑은 불가능을 현실로 만들기도 하고 한 사람의 분위기를 바꾸거나 심지어는 가치관과 삶에까지 여러모로 영향을 줄만큼 인간에게는 꼭 필요한 것인데, 고작 나이(?!) 때문에 주변의 눈치를 보아야만 하거나 이런 일들이 마치 새삼스럽고 상당히 예외적인 일처럼 느껴져서 다음 블로거 뉴스의 메인 한 토막을 장식하고, 거기에 굳이 격려와 응원(?!)의 댓글을 남기지 않아도 되는 진정한 정신적 자유로움이 넘쳐 흐르는 한국 사회로 변해 가기를 희망하면서 오늘의 글을 마친다...

 

p.s:

글로리아의 모습과 에드와의 애정 표현을 보여 주는 사진은 당사자들의 프라이버시 차원에서 올리지 않았으며 영화의 장면으로써 대신하였음을 알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