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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 뉴스]/사회 비평

한자2급시험 준비하는 초등생

by 네 오 2008. 3. 13.

요즘 우리네 사회에서 영어를 비롯한 각종 사교육 문제로 논란이 한창입니다.

글쓴이는 어제 저녁에 이런 사교육의 문제와 함께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의 현주소를 보았다고 여겨지는 일이 생겨서 여기에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요즘 글쓴이는 건강관리 차원에서 요가를 배우고 있습니다.

글쓴이와 함께 요가를 배우는 분들의 3분의 2는 여성들인데 그중에서 결혼을 한 미시족이나 아주머니들이 절반정도 됩니다.

바로 그분들중에 한 여성의 초등학교 6학년 딸이 요가수련을 거의 끝마쳐가는 저녁 8시30분경에 요가원으로 자기 엄마를 찾아온 겁니다.

 

글쓴이도 그렇지만 다른 요가 수련생들도 요가를 배우고 난 뒤부터 다른 사람들의 자세와 안색을 통해 신체의 균형과 건강상태를 가늠하곤 하는데 이 초등학교 여자아이를 보니까 요가원에 들어오자마자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 폼이 기운이 하나도 없고 몹시 지쳐보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모습을 보자 사람들이 한마디씩 하는데 이 초등학교 여자아이의 엄마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다 이래요...학교에서 8교시까지 수업을 마치고 피아노다 뭐다 해서 학원 갔다가 오면 이 시간에야 하루 일과가 끝나고 집에 와서 과제물이나 오늘 배운 과정 복습을 마치고 나면 빨라야 10시에서 10시30분이지요...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친구랑 놀 시간도 없고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는 일도 별로 없지요...아이가 저렇게 지치고 힘들어하면 솔직히 많이 안쓰럽지만 남들도 다하니까(!) 마냥 쉬게 할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러면서 자신의 딸아이에게 조금만 기다리면 엄마 요가수업이 다 끝나니 학교,학원에서 배운 것들 복습하랍니다.

 

그러자 이 초등학생이 가방에서 교재를 꺼내서 요가수련원 휴게실에서 복습을 하는데 마침 글쓴이는 요가수련을 마치고 쉬는 시간이라 잠시 살펴보니 바로 요즘 한창 말많은 조기 영어수업 교재였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생 여자아이가 보던 영어교재의 겉표지 모습.

 

 

글쓴이가 궁금해서 이 친구에게 몇마디 물어보니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영어수업을 했고 지금은 일주일에 6시간씩 수업을 받는다는군요...

그 말을 듣고 어느 정도 수준의 영어수업을 받고 있을까 교재를 훑어보니 예상대로 과거 글쓴이가 중2~3학년때 배웠던 수준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생이 보는 영어교재의 수준은 과거 글쓴이가 중2~3학년때 배우던 수준이었다.

 

 

이미 초등학교 6학년때 글쓴이가 중 3학년때 배운 교재를 수업하는 것을 보며 영어조기교육의 열풍이 우리사회에서 얼마나 맹위를 떨치는지를 실감하면서 또 몇마디 물어보니 이 초등학생의 말이 사실은 자신도 같은 반 친구들보다 1년이나 영어수업이 늦어서 진도를 따라가기가  힘들다고 하며 이 교재도 분기나 6개월단위의 학습교재가 아니라 한달분량의 교재라는 말에 글쓴이는 더욱 질리고 말았습니다.

 영어교재의 제일 앞장에 붙은 교재의 진도표이다. 이달 3월말까지 교재를 끝마치게끔 일정이 빽빽히 채워져 있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시간이 조금 지나자 이번에는 가방에서 왠 A4용지 꾸러미를 꺼내서 보는 것을 보면서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나 넘겨다보니 이번에는 한자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초등학생의 어머니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진 � 장을 찍었다.

 이름을 쓰는 란을 보면 이런 식으로 영락없는 초등학생의 치기가 엿보인다.

 초등학생이 보던 A4용지 꾸러미를 살펴보니 8급부터 시작해서 4급까지 한자가 단계별로 정리가 되어 있었다.

 

  

글쓴이는 이런 광경을 보자 다시 참을수가 없어서 이 아이에게 몇 마디 물어보았습니다.

"얘...학교에서 한자교육도 시키니..."라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면서 앞으로 중국과의 교역도 더욱 늘고 한중관계가 중요해진다며 한자문화권인 중국을 상대하려면(솔직히 이 아이가 이 말의 의미를 정말로 이해하는지는 대단히 의문이었지만!) 한자도 중요하다며 자신은 물론이고 같은 반 친구들 대부분이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한자교육을 받아서 지금은 한자2급시험을 준비중이라는 말에는 정말 놀라고 말았습니다.

 A4 용지에는 이런 식으로 단계가 올라갈수록 한자수가 많아지고 깨알같은 한자가 페이지마다 빼곡히 적혀 있었다.

 

한자 2급이면 글쓴이를 비롯해 우리 사회의 왠만한 성인들도 패스하기가 쉽지 않은 수준인데 이제 초등학교 6학년생이 한자 2급시험을 준비중이라는 말에 우리네 사회의 사교육 문제와 엄마들의 치맛바람이 너무 극성스러운게 아닌가 싶어 정말 질린 표정으로 아이를 쳐다보고 있는데 이 여자아이의 엄마가 요가를 마치고 오더니 하는 말이 "아이가 공부하는데 왜 자꾸 말을 시켜서 방해하세요"라고 해서 글쓴이는 그냥 궁금해서 몇마디 물어본 것이라며 본의아니게 따님의 공부를 방해해서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한다고 말을 했더니 알았다면서 또 이런 말을 합니다

"요즘엔 이건 아무 것도 아니에요...사실 지금도 많이 늦은 거에요...제 친구 아들은 초등 4학년생인데 벌써 한자 2급시험 패스했거든요..."

 

그렇게 말을 하며 딸아이에게 시선을 보내니 이 초등학교 여자아이도 이럽니다.

"그래요...저도 많이 늦었다고 생각해요...더 열심히 해서 엄마 친구 아들도 따라잡아야겠어요..."라고 하는 말을 들으며 그래도 엄마 말씀 잘 듣고 열심히 공부하려는 착한 딸의 모습에 대견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아이를 이렇게까지 키워야만 하는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 꼬마의 엄마가 글쓴이에게 나이를 물어보더니 자신과 거의 동년배라면서 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때 생각하시고 아이들을 보시면 안되지요...우리때 중 3수준 학습이 요즘엔 초등학교 4~5학년이면 다 끝나니까요...사실 우리때는 무얼 몰랐고 너무 구시대적이었죠...지금와서 그 시절 생각하며 아이들을 대하는 것은 시대에 뒤처지는 길이에요..." 라고 말하니 요가수련을 마치고 나온 여성들중에 아이를 가진 여성들이 대부분 이구동성으로 그 엄마의 말에 찬성하는 것을 보면서 글쓴이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소위 글로벌 시대에 영어나 한자를 비롯한 외국어 학습이 조기에 이루어지는 것은 시대적인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져가는 사회에서 좀더 나이가 어릴때부터 남들보다 한발 앞서기 위해 더 많은 사교육과 학습에 모두가 동참할 수 밖에 없다는 현실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시대가 그렇다고 해도 글쓴이는 그런 모습이 너무나 당연하고 그러려리 하는 우리 사회의 흐름이 그렇게 좋아보이지는 않습니다.

 

이제 초등학교 6학년생이 학교와 학원수업에 찌들대로 찌들어서 마치 40대의 중년가장처럼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이 과로에 시달리는 모습이나 친구가 하나도 없다는 말이나 어떻게든 다른 친구들에게 뒤처지면 안된다는 그 아이의 엄마나 거기에 동조하는 다른 아줌마들을 보면서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그것도 진정 남을 배려하고 사랑할 줄 아는 인간답게 키운다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며 지금 이런 식으로 장성하는 아이들이 이끌어가는 먼 훗날의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이 될지를 생각하니 너무나 가슴이 착잡하게 가라앉으면서 자꾸만 이런 생각을 하는 글쓴이가 비정상인처럼 보이고 지금의 사회가 정상인 것처럼 느껴지는 이 상황에 대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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