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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 뉴스]/사회 비평

흡연에도 성차별이 있다

by 네 오 2008. 1. 30.

어제 오후의 일입니다.

친구와의 점심약속이 있어서 시내로 나갈 일이 생겼습니다.

내가 점심약속을 잡게 된 친구는 종각역 부근의 회사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라 오랫만에 회포도 풀겸 점심식사 약속시간을 일부러 오후1시30분경으로 잡았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약속을 정했던 이유는 점심시간이 되면 그쪽 주변 일대의 회사원들이 식사를 하려고 일제히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통에 식당에 오래 앉아 있지도 못하거니와 우선 자리를 잡기도 쉽지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오후 1시 15분경쯤에 친구가 근무하는 회사앞에 도착해보니 막 점심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남자 회사원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를 피우고 있더군요...

하기사 요즘 공공장소나 실내에서 담배를 피울수 없게끔 되어 있으니 이런 모습들이 그리 색다른 풍경은 아니란 생각을 하며 친구를 기다리는데 왠 늘씬한 미모의 아가씨가 점심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듯 보였는데 회사 정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더니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는 게 아니겠습니까...

 

솔직히 그 순간 나도 모르게 그 여자분한테 자꾸만 시선이 가더군요...

여자분의 미모도 미모였지만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를 태우는 숱한 남자사원들 옆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 담배에 불을 붙이는 모습에 나는 상당한 신선함을 느꼈고 조금은 놀랍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남자사원들이 그 여자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자기들끼리 뭐라고 쑥덕쑥덕거리며 고개를 가로젓거나 담배를 끄고 회사안으로 서둘러 들어가버리는 겁니다...

 

그런 일단의 모습들을 지켜보며 한 10여분쯤이 흐르자 친구가 나오더군요.

나는 친구와 무교동 낙지골목에 위치한 한 식당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기다리는 틈을 타서 넌지시 좀전에 회사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미모의 여성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 친구가 피식 웃으면서 하는 말이 자기 회사 직원이 맞고 대리직함을 갖고 있다고 하더군요.

평소에 일처리도 야무지고 상당한 미모라서 회사내에서도 시선을 자주 끄는 편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이 친구도 담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골초입니다.

하루에 최소한 두갑정도는 담배를 태우는데 요즘은 실내에서 흡연을 못하니 업무 중간에 쉬는 틈을 타서 회사옥상으로 올라가거나 회사내의 비상구 계단 한켠에서 담배를 피운다고 하면서 이래저래 눈치보랴 갈수록 담배피우기도 참 힘들다고 내게 푸념(?)을 하더군요...

 

예전부터 담배를 전혀 입에 대지 않았던 나는 이 골초 친구를 만나면 으례히 담배를 끊으라거나 줄이라는 말을 하곤 했었습니다. 또한 담배를 피우지 않다보니 자연스럽게 담배를 피우는 것에 대해서 남녀구별도 크게 하지 않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 친구도 그렇고 다른 흡연하는 남자들도 그렇고 대부분이 여자가 남자앞에서 맞담배를 피우는 것을 좋게 받아들이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니 좀더 자세히 말해서 어떻게 여자가...라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회식이나 모임을 해도 중간에 남자가 담배를 피우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흡연을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데 여자가 먼저 나서서 담배를 피우겠다고 선뜻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를 여러분도 한번쯤은 겪어 보셨으리라 여겨집니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자 친구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담배를 피우는 여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했더니 내 예상대로 자신도 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 마음이 없지만 벌건 대낮에 그것도 남자들앞에서 맞담배를 피우는 여성은 솔직히 좋게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미모의 외국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넌지시 물어보니 이 친구가 하는 말이 "걔네들은 우리하고 다르잖아"라고 하면서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려버리더군요...

 

친구와 점심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회사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그 여자분을 대하던 남자사원들의 반응과 친구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네 사회는 흡연을 해도 순서가 있고 성별이 있고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하는구나라고 말입니다...

 

사회가 민주화되고 여성의 인권이란 개념에 대해서 여러 공론이 오가지만 이렇게 작은 일상속에 한 단면이랄 수 있는  흡연이라는 부분에서조차 우리네 사회는 성차별과 남성들의 권위의식은 여전한 것 같아 조금은 씁쓸해집니다.

 

그리고 어쩌면 흡연하는 여성에 대한 성차별과 아울러서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네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적인 완고함이 문제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장애인을 대하는 시선도 그렇고 정치적인 반대의사를 가진 사람들이나 흡연하는 여성을 대하는 시선이나 본질적으로 다 같은 것이 아닐까요...

 

나와 다른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래로 깎아내리거나 대다수의 의견이라는 미명아래 자신만의 잣대로 성급하게 판단하고 평가하는 그릇된 사회적 인식말입니다.

 

그렇게 보면 외국여자들의 흡연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관대한 심리도 조금은 이해가 되네요...

남성들이 외국여자들의 흡연에 관대한 것은 일종의 사대의식이라기보다는 위에 친구의 말처럼 바로 그들을 있는 그대로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기에 관대해지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 면에서 우리 서로가 차이와 다름을 조금씩만 더 인정한다면 지금 우리 사회에 벌어지고 있는 숱한 갈등과 난제들도 대부분 술술 풀리지 않을까 싶은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제가 담배피우는 여성을 보며 너무 논리의 비약이 심했나요...

 

그나저나 여러분은 담배피우는 여성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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