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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 뉴스]/생활 & 문화

영어 못하는 알바를 비웃는 여대생

by 네 오 2008. 4. 17.

요즘 우리네 사회의 사교육 열풍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특히나 영어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타의추종을 불허하는데 이런 비정상적인 사회분위기를 반영하는 일을 경험해서 여기에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바로 어제의 일입니다.

아직 4월 중순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지방의 기온은 25도까지 치솟았고 정말이지 초여름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날씨가 덥더군요...

그래서인지 점심을 먹고 난 뒤 졸음이 쏟아져 오후 업무를 보기가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며칠간 진행하던 계약건이 오전중에 해결되어서  오후엔 큰 일이 없었고 날도 상당히 더운 관계로 갈증을 달래줄 시원한 맥주 한잔이 생각나서 당일 시간이 허락되고 마음이 맞는 회사 동료 3명과 함께 사무실 근처(글쓴이는 합정방면에 있는 무역회사에 다닌다!) 홍대입구 방면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으례히 남자들이 그렇듯 글쓴이도 평소 맥주를 마시고 싶으면 종종 드나들던 꽤 분위기가 괜찮은 호프집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당시 시각은 7시를 갓 넘긴 시점이었는데 아직 호프집내에는 손님이 그다지 많지 않았고 오래전부터 안면을 트고 지내던 호프집 사장님과 평소 싹싹하고 성실하며 서비스가 좋아서 글쓴이가 예쁘게 보았던 여자 아르바이트의 모습만 보이더군요...

 

글쓴이는 그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하고 전부터 안면이 있는 그 여자 아르바이트의 안내에 따라 회사동료들과 함께 창가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생맥주 500cc와 함께 요즘 조류독감이 극성이라 닭농가가 큰 곤란을 겪고 있다가 여겨서 닭날개를 안주로 삼았는데 다들 호프집에 들어오니 갈증이 더해지는지 맥주부터 일단 주문을 해서 시원하게 한잔 쭈욱 들이켜니 하루의 피곤이 싹 가시면서 정말 날아갈듯한 기분이더군요...

 

그렇게 맥주로 목을 축이며 며칠간 수고했던 동료들과 수고했다고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가방을 멘 20대의 백인 여성 두명과 아주 세련되고 돈푼깨나 들인 옷차림에 고급 명품백을 어깨에 메고 한손에는 꽤 두툼한 책을 든 늘씬한 몸매의 한국 여성 두명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글쓴이가 얼핏보니 그녀들의 손에 든 책은 모 여대의 전공서적이었으며 외국 여자들은 모 여대의 교환학생인 듯 했습니다.

 

그렇게 눈에 확 띄게 예뻤던 그녀들은 아르바이트의 안내를 받아서 글쓴이가 앉은 바로 뒤편의 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바로 그 시점에서부터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는 일이 생겼던 겁니다...

 

글쓴이가 평소 예쁘게 보았었던 여자 아르바이트가 그들에게 다가가 주문을 했는데 백인여자중 한명이 식성이 조금 까다로운지 주문하는 안주에 들어가는 몇몇 야채와 소스를  조금 다르게 해달라고 말하는 듯 했습니다. 글쓴이도 영어를 꽤나 열심히 공부하는 편이지만 처음엔 그리 주의해서 듣지 않아서인지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백인 여성이 영어로 주문을 했다는 것이며 상당히 빠른 어조로 말을 하다보니 아르바이트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해 다시 반문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보통 상황이 그렇게 되면 같이 동행한 한국  여대생들이 외국 교환학생의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주문을 하면 될텐데 어찌된 일인지 그녀들은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이 여자 아르바이트의 대응이 어떻게 나오는지를 보려고 고개를 빤히 들고 가만히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자 아르바이트는 상황이 이렇게 되자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백인 여성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달라는 것인지 질문을 했고 이번엔 백인 여성이 천천히 말을 했는데 워낙 식성이 특별해서인지 주문사항이 상당히 복잡해서 그들의 영어를 들은 글쓴이도 대강의 내용만을 파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 여자 아르바이트의 동정을 살피던 모 여대생중 한명이 아르바이트에게 이러는 겁니다.

"이봐요...아가씨...이 정도 주문도 영어로 못 알아듣고 주문을 못 받으면 어떻게 해요...?" 라고 면박을 주면서 자신의 동료와 깔깔거리며 웃는데 그 모습을 본순간 글쓴이는 그때까지 마셨던 맥주의 시원한 맛이 싹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 시점에서 보다못한 글쓴이가 백인여성의 주문을 우리말로 해석해주었고 그제서야 아르바이트는 메모지에 주문사항을 세세히 받아적고 네가지 없는(!) 그녀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한 뒤 우리 테이블에 건너와서 여러모로 정말 고맙다며 서비스 안주를 하나 더 챙겨다 주겠다고 말하곤 카운터로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상황은 대충 마무리되는 듯 했고 우리는 다시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글쓴이의 돌발행동에 괜히 무안했었는지(?) 그 여대생이 또 이러는 겁니다...

"어휴...여기도 밖에서는 그럴싸하더니 물이 별로네...일하는 알바들 수준이 왜 저 모양이냐..." 그러자 또다른 여대생이 "그러게...이래서 내가 여기 들어오지 말자고 했잖니...세계화 시대라는데 우리나라는 항상 이 모양이라니까...내가 작년에 미국으로 해외연수 가보니까 우리나라 정말 이대로는 안되겠더라구...우리 이모도 이번에 임신했는데 이참에 미국에 가서 몇달 지내면서 영어도 배우고 원어민들의 대화를 뱃속의 아이에게 들려준다고 하더라...요즘엔 태교도 영어로 하는 시대라나... "라고 말하더니 낄낄거리며 조금전 영어 주문을 못받은 여자 아르바이트를 보며 웃다가 금방 언제 그랬냐는 듯 목소리톤까지(!) 바꾸며 외국여자들과 영어회화를 시도하더군요...

 

글쓴이는 그런 그들을 지켜보면서 갑자기 반감이 생겨 그녀들의 영어 대화를 좀더 들어보니 솔직히 아주 잘하는 영어는 아니었는데 정말 우스운 것은 정작 그녀들은 자신들이 상당히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흐르자 글쓴이의 예상대로 그녀들은 어휘력이 점점 딸리는지 영어로 말하는 내용중에 80%이상은 외국여자들이 하고 문제의 여대생들은 계속 맞장구를 치며 웃고만 있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별로 웃기는 내용도 아닌데도 외국 여자들이 웃으니까 무슨 동물원 원숭이처럼 그냥 따라 웃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처음 호프집에 들어설때의 매력적이고 세련된 인상과는 달리 그녀들의 대화와 행태가 갈수록 거슬려서 글쓴이와 회사동료들은 맥주맛이 떨어졌고 급기야 창가가 아닌 안쪽의 다른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서 주문한 안주와 맥주를 마저 마시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영어에 대한 집착은 거의 광적인 수준이라는 생각은 그전부터 가끔 했었습니다.

학교 시험이든 취직시험이든...거의 모든 시험에 중요한 잣대로 쓰이고 소위 세계화시대에 만국공용어인 영어를 잘한다면 큰 도움이 되고 경쟁력도 생기겠지요...

 

그러나 영어를 잘하려고 노력하고 좀더 잘 배우려는 사회분위기보다 오직 영어만을 주요한 잣대로 활용하고 영어를 못하면 각종 시험에서 큰 불이익이 주어지며 그 사람의 인격과 자질마저도 열등하다고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하는 사회가 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또한편으로 문제의 여대생들의 모습을 다시 떠올려보니 옷차림에서부터 부티가 줄줄 흐르는 것이 돈 많고 잘난 부모를 두었는지 등록금이다 뭐다하는 세상의 근심 걱정이라곤 전혀 없는 얼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글쓴이가 알기론 당시 영어주문을 받지 못해서 문제의 여대생들에게 비웃음을 받았던 그 여자 아르바이트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휴학하고(무슨 전문대를 다닌다고 했는데 헤어 디자이너가 되는게 꿈이라며 돈을 모으는 중이라고 했었다!) 저녁시간에 호프집에서 시간당 수당을 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이렇게 어느 한쪽에서는 돈이 없어서 다니던 학교도 휴학하는데 다른 편에 속하는 어떤 이는 잘난 부모를 만나서 명품으로 온 몸을 도배를 하고 무슨 태교 영어니 해외 연수얘기를 자랑스럽게 떠드는 것을 지켜보며 우리 사회내에서 영어가 신분을 고착화하고 계층간의 위화감을 부르는 또다른 수단으로 이미 전락한 것은 아닌지...

 

그리고 이런 식의 그릇된 영어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과 인식은 언제쯤 올바른 방향으로 가게 될지를 생각하니까 아무리 맥주를 마셔도 시원하기는커녕 속에서 불이 나고 왠지 답답해지던데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이 떠오르십니까... 

 

 

p.s: 이 글을 보시고 혹자는 영어의 문제가 아니라 네가지없는 여대생의 문제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글쓴이가 보기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영어에 대한 인식은 위의 여대생과 대동소이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흔히 방송 오락프로나 무슨 토크쇼에서 한창 얘기를 하다가 영어로 답을 하라고 주문을 하고 그걸 못하거나 오답을 내면 완전히 웃음거리가 되거나 무시당하는 콘셉을 연출하는 것을 한두번 본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생각하시면..그리고 실생활에서도 영어를 못하는 사람을 대하는 우리네 인식의 전반이 지극히 냉소적인 점을 감안하면 영어가 얼마나 사대주의적이고 그릇되며 비틀린 형태로 사회안에 자리잡았는지를 실감하시리라 여기면서 오늘의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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