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블로거 뉴스]/생활 & 문화

내게는 아주 특별한 크리스마스

by 네 오 2007. 12. 25.

여러분은 성탄절하면 어떤 추억들이 떠오르시나요..

친구들과의 만남,연인과의 데이트, 가족과의 정겨운 시간...혹은 교회나 성당의 예배나 뜻깊은 봉사활동같은 시간들이 떠오르십니까... 그도 아니면 그냥 혼자서 조용하게 지내셨나요... 

 

저는 이번 성탄절은 아주 특별하고도 슬프면서도 한편으로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회와 소중한 추억을 간직한 날로 기억될듯 싶습니다. 이제 성탄절도 서서히 저물어가는 시점이지만 오늘은 저의 특별한 크리스마스의 사연을 적어볼까 합니다.

 

12월 24일..그러니까 크리스마스 이브인 어제 저녁 저는 한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전화의 내용은 제가 군대시절에 모셨던 중대장님의 돌연한 사망소식이었습니다.  군대제대후 4~5년간은 연락이 끊겨있다가 길에서 우연히 마주쳐 연락처를 서로 교환한 이후로 적어도 3개월에 한번은 만남을 가져오다가 3년전부터 제게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자연히 연락이 뜸했었는데 갑자기 이런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니 솔직히 처음엔 전혀 믿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대장님의 장례식장에 도착하면서 불현듯 군대시절 중대장님과 크리스마스에 얽힌 아름다운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더더욱 마음이 숙연해지고 말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5년전인 1992년 12월 24일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전 당시 막 상병계급장을 단 육군 현역병이었습니다.

군대를 다녀오신 분들은 누구나 아시겠지만 가장 쓸쓸하고 기분이 착 가라앉는 때가 바로 명절때입니다.

가족들 생각, 특히 어머니 생각도 유난히 더 많이 나고 사랑하는 애인 얼굴도 보고 싶고 군대 입대전의 대학 신입생시절의 멋진 기억들을 더듬곤 하지요.  당시 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기분이 꿀꿀한 성탄절을 이번을 포함해서 한번만 더 넘기면 다음에는 집에서 보낼 수 있겠구나라는 막연한 위안을 삼으며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제가 복무했던 부대에는 3달전에 새로 부임한 중대장님이 계셨는데 이 분이 바로 어제 저녁에 갑작스런 사망소식을 전하게 되는 바로 그 중대장님이었습니다. 

이 중대장님은 제가 그 당시까지 보았던 여타의 지휘관과는 많이 다르셨습니다.

부대(중대)내 사병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으며 명령을 내림에 있어 매사 사리에 맞게끔 지시를 하셨기에 당시 부대내의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병들은 그분을 믿고 존경했답니다. 거기다가 이 분은 저와 같은 종교..그러니까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군복무를 해보신 분은 잘 아시겠지만 군대내에서 가장 세력이 큰 종교는 단연 기독교이고 다음이 불교입니다.  카톨릭(천주교)은 상대적으로 신자수도 아주 적고 지원도 형편없었는데 당시 중대장님이 자신의 사비를 털어 천주교를 믿는 우리들에게 간식도 사주시고 평상시에는 말도 붙이기 힘든 중대장님에게 예배시간 전후로는 가벼운 인사나 신상얘기를 하며 친해질 기회를 많이 만들어서 평상시에는 차마 말못할 군생활의 고민들을 들어주곤 하셨답니다.

 

그렇게 군대 생활면이나 종교적으로나 여러가지로 제게는 참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한 분이셨기에 당시 성탄절을 맞아 중대장님에게 카드를 한장 쓰게 되었던 겁니다.

카드의 내용은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3개월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 부대에 중대장님같은 분이 오셔서 너무 좋았고 이번 성탄절을 맞아 주님의 축복과 은총을 가득 받으시라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군대는 시간이 꽉 짜여져 있는 조직입니다. 제가 마음대로 시간을 내어서 누구를 만날 틈이 없습니다.  당시 중대장님에게 성탄 카드를 전할 시간은 오직 크리스마스 이브 날 아침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날 아침 일조점호가 끝난후 잠깐의 틈을 보아서 중대장님에게 재빨리 카드를 전한후 하루 일과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아침 9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저는 중대장님으로부터 호출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당시에 무슨 일인가 싶어 의아해하면서 중대장님에게 가게 되었는데 중대장님이 저를 데리고 바로 작전사령부로 가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그 시간쯤이면 작전사령부에는 제가 다니던 부대의 총책임자인 대대장님이 계실텐데 중대장님이 저를 그곳으로 데리고 간 것입니다. 그리고 저를 대대장님앞에 세워두시고 자신이 책임질테니 제게 4박5일의 특별휴가를 보내달라고 대대장님께 요청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뜻밖의 상황에 크게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도 기쁜 마음에 날아갈 것만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군대에서 휴가라는 말이 얼마나 기분좋고 기대되는 단어인지 다녀오신 분들은 모두 실감하실 겁니다. 거기다가 정기휴가도 아니고 특별휴가라니... 그것도 다른 평범한 때도 아닌 크리스마스 이브에 휴가를 보내준다니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당시 저는 정말 꿈을 꾸는 줄 알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 대대장님에게 휴가신고를 마치고 인사과에서 특별휴가증을 지급받은 뒤 군 수송 트럭을 타고 부대문을 나서고서야 꿈이 아닌 현실임을 실감했으니까요... 당시 특별휴가증을 받고 너무 기쁘고 감격해서 저는 눈물을 글썽이며 중대장님에게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때 중대장님이 이런 말을 제게 하셨습니다.

"00상병!  난 중위로 임관한지 얼마되지 않았고 아직까지 이 부대내의 규율과 사병들의 상황을 잘 몰라서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인지 항시 불안하고 조금은 망설임이 많았었다. 그래서 늘 주님께 기도를 드렸었지...내게 힘을 달라고 말이야...그런데 그런 나에게 주님께서 이렇게 큰 힘을 주시는 메시지를 그것도 성탄절을 맞아 너를 통해서 전해주시는구나...그런 면에서 내가 오히려 네게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구나...이것은 내 작은 감사의 표시이니 휴가 잘 다녀오고 가족들,친구들과 멋진 시간 보내고 돌아와서 지금보다도 더 열심히 나와 함께 군생활을 해보자꾸나..." 라고 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는 당시 그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가뜩이나 당시 제 부대에서는 다른 사병 하나가 휴가중에 아주 불미스런 일을 저질러서 연말연시 전 대대원들의 외박.휴가가 모두 금지되고 중단되어 있는 상황이었기에 감동은 더욱 크고 깊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감사를 표하고 마음을 다해 좋아하다보면 내가 뜻하지 않았던 좋은 일들이 반드시 생길수 있음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저와는 불과 7살 차이밖에 나지 않아서 한창 사회생활을 해야 할 40대 중반의 나이에 그렇게 착하고 좋은 분이 이토록 일찍 이 세상을 떠나가시다니...

그것도 다른 날도 아닌 주님이 이 세상에 인간을 구원하러 오시는 바로 그 날...하늘나라로 가셨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한없이 애석하고 슬프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중대장님 같은 분이라면 정말로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라고... 그래서 주님의 품안에서 은총과 사랑을 가득 받고 계실 것이라고 하는 믿음이 어느때보다도 강하게 생기는 그런 성탄 전야가 되었습니다.

 

비록 어느 때처럼 즐겁고 멋진 기억의 성탄절은 아니었지만 제 젊은 날의 아름다웠던 기억들과 그 속에 살아있는 중대장님을 앞으로도 오랜 시간 잊지 못할 것 같네요...

중대장님은 언제나 제게는 다정한 형과 같은 존재였습니다...지금 이 순간 이곳에 살고 있는 제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흔들릴때마다 저를 지켜봐주세요...저도 중대장님을 위해 시간날때마다 기도해 드릴께요...

 

존경하고 사랑하는 중대장님...하늘나라에서도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Daum 블로거뉴스
이 글에 공감하시면 네모안 엄지를 눌러주세요!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