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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 뉴스]/시사 평론

사법부의 오만함과 석궁테러사건

by 네 오 2007. 9. 13.

냉소주의에 빠진 나를 발견하다

그러면 그렇지... 혹시나 하던 나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보복폭행사건으로 구속수감되었던 한화 김승현회장이 결국 항소심에서 집행유예선고를 받았다..

대한민국 법원은 언제나 그렇듯이 힘 있고 돈 있고 머리 좋은 소위 화이트 칼라 범죄자들에겐 지극히 관대하다는 세간의 불문율(?)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우리 모두가 어린 시절부터 학교에서  배운 숱한 도덕,윤리와 법치주의에 대한 말들은 누구를 위해 만든 말인지 모를 지경이다.

 

왜 대한민국의 사법부는 국민들의 일반적 정서에 어긋나는 이런 판결들을 거듭하는 것일까? 

멀리 갈것도 없이 얼마전 두산그룹 박용성회장,현대 자동차 정몽구회장의 분식회계를 모두 집행유예로 판결해서 재벌봐주기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비난을 들었던 법원이 또 한번 국민들에게 커다란 비난거리를 제공한 셈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과거 사법부의 관행을 비판하면서 법의 형평성이 모든 이들에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자주 말해왔지만 현실에서 법원의 판결은 과거와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여기서 혹자는 과거 사법부가 무슨 문제가 있었나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런 분들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얘기이지만 대한민국의 사법부는 애초부터 국민들을 위해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 냉소적인 나의 주장이다.

 

해방 전  일제치하에서는 소위 고등경찰이라는 이름아래 국민들에게 사법부는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며 해방후 이승만 정권부터 박정희군부정권,전두환 군부정권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치,재계,학계의 온갖 권력과 결탁해 사법부가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만 혈안이 되어왔던 모습들을 역사 공부를 통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2,3차 사법파동을 거치면서 그나마 양심적이던 법관들은 모두가 법조계를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길을 찾기에 급급한 모습을 취했다는 건 어쩌면 인지상정일지도 모르지만 이건 정도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만 그런것일까. 생각할수록 최근 법원의 판결들이 영 마음에 들지 않던 내게 한 가지 끔찍한 기억이 떠 올랐다.

 

끔찍한 기억...석궁테러 사건

여러분은 혹시 얼마전 석궁테러 사건을 기억하시는가. 

현직고등법원의 판사가 귀가길에 집앞에서 판결에 불만을 품은 사람이 석궁으로 쏜 화살에 맞았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말이다. 혹시라도 그 사건의 발단과 개요를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간략히 사건의 경위를 되짚어보았다.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였던 김명호씨가 1995년 당시 대학입시 본고사 수학문제에 중대한 하자가 있음을 지적하고 시험을 본 학생들에게 그 문제에 한해서만은 전원만점을 주거나 영점 처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성균관대가 재임용에서 김교수를 탈락시켰다. 또한 김교수의 성균관대 동료수학교수들이 하루아침에 말을 바꿔서 김교수가 평소 동료나 제자들에게 평판이 좋지 않았다면서 성균관대의 재임용탈락조치가 정당하다고 주장했으며 법원은 성균관대의 해명만을 일방적으로 적용해 부교수직 직위확인 소송을 낸 원고였던 김명호씨를 1,2심에서 거듭 패소판결함으로써 재임용소송의 원고였던 김명호씨가 소송을 담당했던 현직판사를  석궁으로 쏜 사건이 바로 사법사상초유라는 석궁테러사건의 전말이다.

 

이 사건에서 근본적인 문제는 김씨의 평판이나 교수로써의 품행이라는 주관적사실들을 객관적인 김씨의 연구실적이나 학계의 판단보다도 우선적으로 취급해서  법원이 김씨를 막다른 궁지로 몰아붙였다는 사실에 있으며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석궁테러는 어쩌면 예고된 비극이었을수도 있다는 점이다.

 

당시 김씨의 재임용 탈락에 대해 수학계에서는 "올바른 문제제기를 했는데도 재임용에서 탈락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전국 44개 대학 수학과 교수 1백89명은 "문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으며 성균관대에서 제시한 모범답안은 문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호도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김씨의 이의 제기는 정당했으며 이를 둘러싼 갈등이 인사에 영향을 미쳤다면 매우 잘못됐다"라는 내용의 연판장을 당시 재판부에 제출하기도 했었다. 당시 연판장에서 교수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정상급 저널에 3편이나 논문을 내고 (응용수학의 한 분야인) 수리물리 유수잡지에 논문을 발표한 연구실적을 낸 김씨가 탈락한다면 국내의 수학자 중에서 부교수로 승진할 수 있는 수학자는 별로 많지 않으리라는 것이 우리들의 솔직한 의견"이라며 연구 소홀을 재임용 탈락 사유로 든 성균관대를 강력히 비판했다.

 

또한 세계 양대 과학지 중 하나인 사이언스(Science)와 수학 분야 국제학술지 매서매티컬인텔리전서(Mathematical intelligencer)로부터도 `한국 수학계에 자정능력이 없다'는 국제적 비판을 듣기도 했다. 첫 재판 당시 재판부로부터 전문가 의견을 요청받은 대한수학회와 고등과학원이`의견을 낼 수 없다'고 회피하자 서지 랭 예일대 명예교수와 마이클 아티야 에딘버러대 교수 등 세계 수학계의 거장들이 항의성 서한을 보내는 일까지 벌어졌었다.

김씨 재임용 탈락 당시 연판장에 서명했던 한 교수는 "부당한 해직을 당했는데도 사학재단에 휘둘려 자신의 안위만을 고려하고 침묵하는 학계 풍토와 이를 구제해 주지 않는 사법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과 좌절로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것이 아닌가 싶다"며 김씨에게 동정론을 펴기도 했었다.

이에 대해 성균관대측은 "김씨는 재직 당시 학생들과 동료 교수들에게 돌출 발언을 많이 하는 등 사회성이 부족했고 여러 문제가 있었다"며 재임용 탈락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법원은 언제나 그랬듯이 힘있고 영향력있는 성균관대 사학재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법원의 판결이후 김명호씨가 석궁으로 재임용소송의 재판을 맡았던 고등법원 부장판사의 가슴에 화살을 날리자 사법부 전체가 크게 술렁였다. 이용훈  대법원장 주재하에 긴급회의를 열만큼 법원의 권위에 대한 심대한 도전이라고 성토하면서 김명호씨를 엄중처벌해야 한다고 하는 의견이 법조계에선 다수였다고 알려져 있다.

 

사법부의 진정한 권위

내가 여기서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건 사법부의 권위란 것이 한화 김승현 회장의 경우처럼 권력과 힘 있는 사람들,돈 많은 사람들, 그리고 많이 배운 이들 (김명호 교수는 여기서 극히 예외적인 사례이다.그래서 더욱 주목해 보아야 한다. 사건을 자세히 보면 사법부의 관행과 학계의 부정적 관행이 합작해 빚어낸 총체적인 비극이기 때문이다.) 에게만 관대한 판결을 내리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가혹한 판결을 내려도 국민들 모두가 묵묵히 받아들이고 참아야 한다는  의미의 권위라면 그게 진정한 권위가 될 수 있겠는가라는 점이다.

 

사법부의 진정한 권위는 법의 형평성에 맞는 공정한 법집행과 법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이상을 구체적으로 법관들이 판결을 통해 실현함으로써 국민들 모두가 정의의 가치를 믿고  대한민국사회가 법치주의 사회임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것에서 생기는 것이지 지금과 같은 불공평한 법집행을 남발하면서 사법부의 권위타령을 한다면 이건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밖에는 안되는 것이다.

 

법원의 김승현 회장 집행유예판결소식과 함께 내 기억에 떠오르는 영화 홀리데이로 잘 알려진 지강헌이 남긴 명언 아닌 명언 "유전무죄, 무전유죄" 가 법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말보다 ..또한 소크라테스의 저 유명한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보다 더욱 가슴에 와 닿는 그런 사회..그리고 석궁테러라는 끔찍한 사건속에서 사건의 피해자인 고등법원 판사보다도 사건의 가해자인 김명호씨에게 자꾸만 동정이 가는 사회를 사법부가 스스로 만들지는 말아주었으면 한다는 바램과 함께 연초에 무산된 사법개혁안이 반드시 재상정되어서 국회를 통과하기를 기대해본다.

 

 

 

 

후기: 여기서 한번쯤  사법부의 과거를 살펴봄으로써 현재의 대한민국 사법부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단 일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얘기가 너무 길어지므로 시기는 박정희정권때부터 보기로 했다.

 

사법부의 부끄러운 과거사 - 사법파동

1차 사법파동

1971년 박정희는 10월유신을 진행하기 위한 사전 조치로써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신직수에게 사법부 길들이기를 명령한다. 1971년 7월 28일 서울지검 공안부는 국보법 무죄판결을 많이 낸 재판부로 유명했던 서울지법 항소3부 이범렬 부장판사와 최공웅판사등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구속 혐의는 재판부에 할당된 국가보안법 위반사건의 증인심문을 위해 제주도에 갔을 때, 피고인의 변호사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았다는 것이다. 혐의내용은 수사결과 대부분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국가보안법에 대해서 회의적이던 법관들을 감시하고 은밀하게 뒷조사와 미행 ,함정수사까지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사건에 불만을 품은 법관들이 집단적으로 사표를 내며 반발을 시작했던 것이다. 일선 판사들이 집단 행동을 시작하자 박정희는 구속영장을 청구했던 공안부 라인을 문책성 전보 인사조치하는 것으로 사태가 악화되는 걸 일단 무마시켰다. 그후 1971년 10월에 유신헌법이 발효되어 법관 재임용제도가 도입되자 1973년 박정희는 법관 재임용에서 전체법관의 10%가 넘는 48명의 법관을 해직시켰다. 재임용에서 탈락한 판사들은 대부분 당시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학생들이나 국가보안법의 이름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던 법관들이었다. 법관들의 대규모 강제해직과 판사들의 반발이 헌정사상 최초로 표출된 이 사건을 역사에서는 1차 사법파동이라고 기술하며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사법부는 권력의 시녀로 전락했다고 개탄하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2차 사법파동

1979년 10.26 사건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신군부가 판결한 내란목적살인죄 대신 단순살인이라는 의견을 냈던 대법원판사 6명 모두를 전두환은 재임용에서 탈락시킨다.

당시 신군부의 리더였던 전두환에게 박정희시해사건은 김재규가 내란을 목적으로 박정희를 살해했다고 판결이 나야만 하는 그런 성격의 사건이었다. 그래야만 김재규를 필두로 한 박정희시해세력 다시말해 내란주도 세력(?)을 척결한다는 명분아래 자신의 쿠데타가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일부의 법관들이 이런 자신의 계획에 반대를 하니 눈뜨고 가만히 보고 있을 전두환이 아니었던 것이다.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고 당시 대법원장에서 해임된 이영섭 대법원장은 신군부의 온갖 탄압과 감시에 마음고생을 하다가 결국 쓰러져 입까지 돌아가고 말았다. 이영섭이 물러난 대법원장 자리를 꿰어찬 유흥섭이라는 인물은 법관 인사의 난맥상을 고발하는 글을 기고했던 판사를 지방으로 발령했다가 판사들의 집단반발을 일으켰고 이 일련의 소동이 바로 2차 사법파동이라 불린다. 여기서 유흥섭이라는 인물은 바로 전두환을 필두로 하는 신군부가 원하던 내란죄를 적용해 김재규를 단죄한 대표적인 법관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전두환이라는 절대권력을 등에 업고 대법원장에 오른 것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는 인사조치의 대표적 사례였던 것이다. 1차사법파동에 이어 2차 사법파동을 거치면서 대한민국의 사법부는 철저히 권력에 길들여졌으며 법관의 양심을 망각하고 힘과 권력 .재력을 가진 이들게는 한없이 관대한 사법부로 자리매김한다.

 

3차 사법파동

3차 사법파동은 1993년 5월 당시 대구지법 판사였던 신평이 한 주간지 기고문에서 “지금 우리나라에는 개혁의 시기가 도래했다”며 “이 기회에 사법부에 내재한 병폐를 스스로 시정하자”고 주장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사건으로 신평이 판사재임용에서 탈락하자 강금실(전 법무부장관), 박시환 등 당시 서울지법 민사단독판사 28인이 ‘사법부 개혁에 관한 건의문’을 제출하고, 여기에 변호사와 사법연수원생까지 동참해 결국 김덕주 당시 대법원장이 퇴진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3차 사법파동의 주역인 강금실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하자 검사들이 집단반발한 것도 모두 사법부의 부정적인 과거의 역사와 관행들을 뒤집을수도 있는 문제의 인물로 강금실을 보았기 때문인 것이다. 당시 검사스럽다 라는 말을 신종유행어로 만들 정도로 그들만의 성역은 공고했다. 사법개혁이 절실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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