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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 뉴스]/시사 평론

386세대가 본 386정치인의 한계

by 네 오 2007. 9. 6.

나는 소위 386세대다

나는 지금의 초등학교가 국민학교라는 호칭으로 불리우던 시절 학교를 다닌 사람이다.

국민학교 5학년때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소식을 접했고 국민학교 6학년때 지금도 그 의미나 해석이 분분한  광주민주화운동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경험했다. 당시 어르신들은 전두환의 잔인함에 치를 떨면서도 감히 공공연하게는 전두환을 비방하지 못하는 공포스런 분위기였음을 당시 어린 내가 느낄 정도였다면 20대의 여러분들은 상상이 가시는지..! 

 

지금도 내 기억에 선하다. 전두환이 방송에 나와 무슨 계엄령( 계엄령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 건 대학에 들어와서였다!) 인지 뭔지를 선포한다고 하는 방송을 본 기억들을 말이다.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텔레비전앞에 모여앉아 " 저 빌어먹을 인간이 대통령하겠구만 "하는 소리들을 하면서 울분을 토해내는 걸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당시 국민학교에서는 아침마다 조회를 했고 새마을 노래를 틀었으며 저녁무렵이면 국기에 대한 경례로 하루일과를 마감했었다.  학생 일인당 하나씩은 꼭 저축통장을 만들어야 했으며 북한은 철천지원수, 소련은 북한을 조종하는 실질적인 배후세력, 그리고 미국은 우리에게 더 할수 없는 우방으로 교육받으며 그렇게 자랐다. 한마디로 내가 국민학교부터 고등학교를 다녔던 당시는 냉전시대였다. 그리고 경제발전과 선진조국창조 그리고 지금도 지겹도록 보수(?)를 자청하는 모 정당에서 외쳐대고 있는 반공이란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그렇게 국민학교를 다녔다. 국민학교때부터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때까지 시도때도 없이 반공포스터경시대회다 반공글짓기를 하며 보낸 것이다. 정말 당시엔 다른 건 전혀 생각을 못하게 하고 오직 그런 반공교육만 받았다.

 

 

1980년대 후반 대학에 들어가서 비로소 이 땅의 비극에 대해 고민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이 대학에 가는 목적은 정말로 학문을 즐겨서도 뚜렷한 목표가 있어서도 아닌 좀더 좋은 일자리를 잡을 수 있고 한국사회에서 보다 안정된 위치를 가질수 있는 발판으로써 대학을 갔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정말 아무 생각도 없고 그저 대학졸업해서 좋은 일자리 잡고 좋은 여자 만나 결혼해서 부모님께 효도해야지 하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서 보니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부터 고등학교때와는 뭔가가 많이 달랐던 것이다. 그때까지 학교선생님들이 가르쳐주지 않았던 내가 전혀 모르던 얘기들이 대학에서는 너무나도 많았다. 지금은 너무 많이 들어서 모두가 식상해하지만 당시엔 너무나도 신선했던 얘기들...!    그 소름끼치던 어린 시절 광주의 비극을 주도한 건 전두환이었고 그 배후엔 미국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는 당시 신입생이었던 내게는 커다란 충격이었던 것이다.

 

5.18 광주의 슬픈 역사와 미 문화원 방화사건에 대한 의미해석을 한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으며 분단의 현실과 군부독재의 폐해, 민주주의에 대해서 비로소 눈을 뜬 시기가 바로 대학생시절이었다. 당시 나는  내 자신이 무척 한심했고 그동안 속아 살아왔던 지난날들의 굵직한 사건들을 되돌아보며  분노하고 아파했었다. 지금의 20대들은 전혀 이해를 못하겠지만 당시 대학선배들은 거의가   참으로 비장했고 너무나도 순수하고 진지해서 그런 선배들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을수 없는 뭔가가 있었던 것이다. 정말 당시는 모두가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군부독재만 종식시킬수 있다면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다가올줄 알았고 반민주적인 군부독재를 비호하고 묵인하는 미국이 물러가면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올줄 알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이 글을 쓰는 나나 선배들 그러니까 요즘 말로 소위 386세대는 군부독재에 대한 원천적인 반발심과 미국의 지나친 내정간섭을 배제하려는 마음이 어느세대보다도 강했던 셈이다. 당시에는 그게 양심있는 대학생 그리고 모두가 지향해야 할 지식인의 모습이었으며 학생운동이 절정에 달한 시기가 또한 그때이기도 했다. 이런 사실을 지금의 20대들은 분명히 알아야만 한다. 이건 요즘 회자되는 무지몽매한 너희들은 나를 따라야만 한다는 운동권의 먹물정서는 분명 아니었다는 말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 대학은 고등학교와는 정말 많이 달랐다. 고등학교때는 어른들이 항상 간섭도 많이 하고 행동에 제약이 참 많았는데 대학생이 되고 나니 우선 행동반경이 무척이나 넓어졌다. 대학생이 되니까 웬만하면 어르신들도 성인대접을 해주며 간섭하는 일도 드물어졌다. 그런 자유 아닌 자유를 맛보며 대학을 다니면서 선배들에게 이끌려 이런 저런 사회학에 대한 세미나를 정말 많이도 했었다.

 

돌이켜보면 어린 학생시절 지겹도록 들어왔던 군부정권의 온갖 제약과 사슬들을 끊었던 시기가 대학시절이었고 한국의 근현대사전체를 놓고 봐도 그때만큼 치열하게 우리 나라의 대학생들이 민족과 분단의 아픔,그리고 우리나라의 정치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시기가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지금도 가끔 한다.

 

 

대학시절에 이미 학생운동의 대항축을 상실하다.

그런데 문제는 90년대 초반 당시에 노태우와 김종필과 삼당야합을 한 민주투사(?) 김영삼이 지역감정에 기반해서 대통령이 되고 전세계적으로는 초강대국 미국과 대치하던 양대축이었던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그동안 학생들이 목표로 했던 군부독재종식과 미국으로부터의 간섭배제라는 큰 틀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당시 나를 비롯한 많은 386세대의 의식있는 사람들은 미국식자본주의에 대해 크게 회의했으며 우리 사회가 일정부분 사회민주주의적인 체제로 가야 한다고 보았는데 소련의 몰락이라는 소식은 사회민주주의라는 화두 자체가 반공교육에 물든 이 땅에서는 영원히 구현되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절망감때문이었다. 거기다 겉으로는 무늬만 민주투사(?)인 김영삼이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군부독재 종식이라는 구호도 선명했던 상징성을 많이 훼손당하고 말았다.

 

한마디로 그 당시를 정의하자면 그동안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커다란 대항축이 사라진 것이다.  눈에 보이는 적이 사라진 허울뿐인 민주주의라고나 할까.

 

한국 사회는 겉으로는 급속히 민주화되어가는 듯 했고 그토록 민주화투쟁에 진지했던 선배들도 하나둘씩 사회로 진출해서 취직을 하고 각자의 삶을 꾸려가기 시작했다. 내가 군대에 갔다가 다시 돌아온 대학교정엔 치열한 데모나 가슴끓어오르는 분위기는 더 이상 없었던 것이다.  당시 내가 정말 당황스러웠던 건 어느덧 대학의 놀이문화도 바뀌어 있었다. 대학 신입생시절엔 탈춤이나 풍물동아리가 제법 있었고 방학때는 농활을 가서 농촌의 현실에 대해 고민하기도 하고 같이 어울려 몸을 부대끼며 우리 전통의 타령이나 운동가요도 북을 치면서 같이 노래했었던 반면에  90년대 중반의 대학에서는 소위 서태지류의 대중음악이 대학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개인주의가 팽배해서인지 각자가 따로 놀았다.지금의 20대들의 어린 시절이 바로 이무렵이 아닌가 싶다. 김영삼정부의 세계화시대라는 허울좋은 구호와 OECD가입, 그리고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라는 얘기가 끊임없이 나오던 때도 바로 이때였다.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반민주적인 요소들은 여전했던 것이다. 처음부터 5.18 광주의 비극을 주도한 전두환과 그의 협력자 노태우와 결탁해 정권을 잡은 변절자 김영삼이 내세우는 세계화나 OECD가입,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구호나 박정희시절의 선진조국창조나 경제발전해서 잘살아보자는 성장논리가 하등 다를게 없다고 난 생각했다. 문민정부라면서도 북한과는 여전히 적대관계로만 설정이 되었으며 통일에 대해서 논하거나 군부정권과 야합한 김영삼이나 지금의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정당 그리고 민자당을 비판하면 국보법으로 다스려지기 십상인 그런 시절이었다.

 

오늘 내가 말하고픈 당시 나를 비롯한 386세대의 한계는 바로 그 지점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본격적인 얘기를 해 보겠다.

 

 

내가 보는 386세대의 한계

1987년 6.29 선언으로 인해 외형상 민주주의가 도래하는 듯 했지만 소위 성장만능주의로 대변되는 박정희 개발독재의 패러다임을 대체할 실질적인 논리가 386세대에겐 아직 없었다는 것이 오늘 내가 말하려는 핵심이다.

(소위 재벌로 대변되는 대기업중심의 지나친 수출주도형 경제구조가 언젠가는 큰 위기를 가져올 것이란 사실을 모두가 어렴풋이 짐작했음에도 다른 비전을 제시해 국민들을 설득하고 새로운 판을 짜기엔 당시 386세대가 사회적으로는 너무나도 어렸었다는 것이 문제였다고 난 생각한다.)

 

그리고 김영삼 정부 말기인 97년 IMF외환위기가 왔다. 그 때는 나 역시도 사회에 진출한지 불과 2~3년정도 밖엔 안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때 숱한 우리 386세대가 호된 사회신고식을 치루어야만 했었다. 당시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하루하루가 참 불안했었다. 그 당시에 난 그래도 이름난 대면 알아주는 대기업에 근무했었지만 사무실에서 팩스용지 하나라도 아끼자는 분위기였고 회식이나 정시퇴근같은 말은 감히 생각할수조차 없는 숨막히는 그런 분위기가 계속되었다.

당시 갓 출범한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가 당장 외환고를 충당하기 위해 국내의 알짜배기 기업을 외국인들에게 헐값에 팔아도 누구도 반대할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노동자들의 대량해고와 비정규직화가 급속히 진행되어도 외환위기로 인한 국가부도 사태라는 국가적 위기아래에서는 어쩔수 없는 것이 아닌가 여기며 우리 모두 각자가 개인적으로 고통을 감내한 시기가 또한 그때였었다.  너무나도 어려움이 많은 시기였기에 해방후부터 지금까지의 왜곡된 과거사에 대한 근본적인 정리들...그리고 70~80년대 학생운동에서 줄곧 문제를 제기했던 군부독재로 인한 갖가지 폐해는 전혀 해결이 되지 않은체 그대로 묻혔으며 국민 모두가 외환위기 극복이라는 화두에 매몰되어버렸다. 그때 어쩌면 이미 우리들은 국론분열이라는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무섭게 커 가는 것을 무심코 방치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20대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이 시점에서 정말 난 물어보고 싶다. 지금의 20대들이 불만을 품는 이 모든 사회경제적 비극들이 386세대 정치인들의 책임인가? 정말 그런가? 이런 일이 벌어질 당시에 소위 386세대가 몇살이었는지 그대들은 생각해보았는가?

당시에도 이들이 지금같은 사회적 지위에 있었는가? 당시에 권력을 휘두르며 나라를 지금 이 지경으로 몰아넣은 이들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지금의 20대들은 말한다.  소위 386세대정치인들의 교육정책의 희생자가 바로 자신들이라고 말이다. 20대가 교육정책의 희생자라고 말하지만 386세대가 받고 자란 반공교육보다는 훨씬 인간적이란 사실을 20대의 그대들은 알고 있는가..그때도 대학은 취업을 위한 발판이었지만 그래도 당시엔 선명하게 우리가 대항할 군부독재가 있었고 너무나도 순수하고 진지한 청년들이 많았었음을 지금의 20대들은 알고 있는지..그런 진지한 분위기가 20대의 그대들에겐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먹물정서로 비치겠지만 절대 그들을 그렇게 규정지을수 없다고 지금도 자신있게 말할수 있다고..!  지금도 그들중 상당수는 20대의 그대들이 비웃는 소위 시민단체안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꿈꾸며 자신의 삶을 불사르고 있음을 한번이라도 상상해본적이 있는지를 말이다..다만 그때보다 외환위기로 인해 386세대가 대학을 다닐때보다 지금의 20대가 대학을 다니면서 느끼는 취업에 대한 스트레스나 경쟁은 더 심화된 건 사실이라는 부분만이 다를 뿐인 것이다.

 

 

 

참여정부에 걸었던 기대와 좌절

어쨌거나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리고 노무현 정부가 출범했다. 당시 나를 비롯한 많은 386세대가 노무현을 적극 지지했었다. 소위 386세대...연령층이 30대~40대 초반의 그룹의 지지도면에서 노무현은 당시 한나라당의 이회창을 크게 압도했었다.

 

그 이유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해방후부터 지금까지 우리 민족과 과거의 아픈 역사와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젊은 날의 꿈과 이상을 노무현이란 사람이 어느 정도는 실현할수 있으리라고 모두가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참여정부내내 경제는 경제대로 외환위기로 촉발된 양극화가 점점 심화하고 정치는 정치대로 386세대의 정치인들이 비로소 정치 무대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그들이 정치의 확고한 주축도 아니었고 또한 새로운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예전의 80~90년대 초반의 모습과 구호들을 되풀이하는 듯 하니까 점차 사람들에게서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요즘 나는 가끔 대학시절의 선배나 친구들을 만나면 그 누구도 젊은 날 우리가 그토록 치열하게 고민했고 술잔을 기울이며 열변을 토했던 그때를 언급하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에 새삼 주목한다. 모두가 삶에 지치고 가슴속에 품었었던 샛파랗던 푸른 꿈들이 급변하는 시대에 찌들어 노랗게 사그라들었음을 모두가 느끼기 때문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마디로 지금 386세대는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세대이다. 386세대 역시 급변하는 한 시대안에서 최선을 다했고 이 땅에 민주주의가 확고히 뿌리내리길 그 누구보다도 간절히 원했지만 그 결과는 의도와는 달리 이렇게밖에 되지 않았다는 자괴감과 과거의 아픈 역사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20대들의 눈에는 비웃음거리로밖에 치부되지 않는 민주화운동에 대한 386세대들의 열정들은 가슴에 묻고 386세대 대다수가 침묵하는 그런 시대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 밖에 될수 없었던 원인이 386세대의 무능이라고 20대의 여러분들이 치부한다면 더 이상 할말이 없다. 그러나 당시의 소위 386세대였던 나를 비롯한 우리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그런 노력들이 모여서 그나마 지금 광주의 의미를 다시 살리고 시청앞 광장을 데모의 물결이 아닌 월드컵의 물결이 넘쳤던 진정한 의미의 광장으로써 다시 기억할 수 있게 되었음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현재 참여정부의 대통령을 이만큼 대놓고 비판할 수 있는 오늘같은 모습의 사회가 되게 하려고 얼마나 많은 대학생들이 당시에 박정희,전두환군부독재하에서 피를 흘렸을지 20대의 여러분들은 한번쯤 깊이 고민하시길 부탁드린다

 

 

결론

10대부터 80~90대까지 우리 세대 모두는 일정부분 약소국한반도에 태어난 아픈 역사의 희생자들이다.

지금의 20대들은 386세대와 정치인들을 무척이나 싫어하고 비난하지만 정말 당시에는 그렇게밖에 할수 없었던 시대의 아픔과 정신이란게 있었다. 이제 우리 사회도 지금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꾸준한 경제적성장을 주된 목표로 삼겠지만 우리들의 아픈 역사에 대한 다양한 분야의 심도있는 연구와 사회각계 각층의 활발한 토론이 절실히 필요하고 광주민주화운동이나 일제치하의 우토로같은 아프고 민감한 역사적주제들에 대해서는 사회적공감대가 하루빨리 형성될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끝으로 개인적인 얘기 한토막 더 하련다.

어린 시절 나의 어머니는 겨울이 한창이던 어느 날 나를 이끌고 국민학교 운동장에 가셨다.

당시 운동장엔 하얀눈이 밤새 내려 있었다. 나는 눈을 보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눈을 뭉쳐 던지기도 하고 눈사람을 만들기도 하며 즐거워했다. 그렇게 한참을 놀고 나서 어머님께 갔을때 나를 가만히 보시며 한 어머님의 말씀을 나는 지금도 잊을수가 없다.

그때 어머니는 내게 이런 말을 하셨다.  " 내가 뛰놀던 자리를 보려무나! "  그리고 나를 이끌고 조용히 운동장을 걸어다니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 사랑하는 아들아!  엄마와 함께 걸었던 길과 내가 아무 생각없이 뛰놀던 자리를 비교해보려무나 "  그때 난 내가 마구 흔적을 남긴 발자국들과 어머님과 함께 걸었던 가지런한 발자국들을 보며 의아해했었는데.. 그때 어머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아들아 내가 어디에 있는지...또 어디로 가야 할지 목표가 없으면 인생이란 길도 이와 같단다" 라고 하셨던 것이다.

난 지금도 절망적이거나 크나큰 좌절을 맛보면 그때 어머님이 들려주셨던 이 말을 떠올리고는 한다.

 

나는 우리네 사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서 있는 지금이 어떤 시대인지 냉철히 따져보아야만 하고 미래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되 분명한 방향과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 그리고 우리가 서 있는 지금 이 시대를 분명하게 알려면 과거의 근현대사에 대한 역사인식부터 다시 정립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 386세대정치인들에 쏟아지는 온갖 비난과 억측들도 그래야만 바른 길을 찾을수 있을 것이다.

지금 범여권의 몰락  좀더 범위를 좁혀 386세대정치인에 대한 비난과 정치적입지의 축소는 바로 아픈 과거에 대한 진지한 성찰부족과 역사인식의 부재가 낳은 우리 사회의 필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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