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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 뉴스]/시사 평론

아프간 피랍소식을 접하며 느낀 기독교에 대한 불편함

by 네 오 2007. 7. 22.

한국 기독교회의 문제점

 

아프가니스탄에 선교와 봉사활동을 나갔던 일부 기독교인들이 탈레반에 의해 피랍이 되었고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는 한국군이 정해진 시간안에 아프간에서 철군하지 않으면 억류한 한국인들을 모두 처형하겠다고 협박한다는 끔찍한 소식을 접한 건 어제 저녁무렵이었다.

이곳 다음 블로거뉴스에서도 이 문제로 올라온 기사들이 굉장히 많은 걸 보면 이 문제가 초미의 이슈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 중에는 아프간 피랍과는 관계없는 좀 불편한 얘기들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최근의 이랜드사태에서도 보여지듯이 일부 개신교신자들의 맹목적인 선교행태와 그들만의 독선을 비아냥거리는 네티즌들과 댓글들이 엄청나게 많은 것을 보면서 한국 기독교회가 이미 위기의 한복판에 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회(개신교회)의 문제점을 몇가지 짚어보기로 했다. 문제를 지적하기에 앞서 나는 기독교(개신교)를 믿다가 일종의 염증을 느껴 천주교로 개종한 사람임을 밝혀둔다.

 

한국의 기독교회(개신교회)는 커다란 위기에 처해 있다.

양적으로는 엄청난 팽창을 거듭했으나 질적으로는 점점 과거보다 못한 모습으로 일관하다가 오늘에 이르러서는 이런 끔찍한 비난을 받고 있는 지경까지 오게 되었다.      한국 기독교회는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혹시 여러분은 종교자본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종교자본이란 종교가 마치 자본처럼 기능함을 말하는 일종의 개념정의이다.

자본이 투자되면 이윤이 발생하고 , 이윤이 발생하면 또다시 자본으로 투자되어 더 많은 이윤을 발생하게 되는 것이 자본주의의 기본원리인 것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기독교회는 기독교가 자본처럼 굴러가고 있다!

 

예를 들어 보자.

기독교회를 어느 지역에 건립하면 교인이 모이고 그들에게서 십일조를 위시한 각종 헌금이 걷힌다.

이렇게 교회에서 거두어들인 신자들의 헌금이 우리사회의 어렵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쓰인다면 더 바랄게 없겠으나 대부분의 기독교회는 자체 소비하는 일부 비용을 제외하고 신자들의 헌금으로 교회를 더 크게 증축하는 것이다. 그러면 신자들이 더 많이 올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게 되고 이것은 곧 더 많은 헌금으로 연결된다. 완전히 자본의 논리이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기독교회는 점점 커지고 대형교회가 되고 ,교인수는 점점 늘어가는 것이 한국 기독교회의 전형적인 성장사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본래의 예수님의 복음 정신은 망각하고 심각한 부정적인 현상들이 기독교회에 일어나게 되었는데 그 문제점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한국 기독교회는 너무나도 부자지향적이다.

오늘날의 한국기독교회는 가난한 자들보다 부자들에게 관심이 훨씬 많다.

목사들은 평등한 사회공동체 형성에 이바지하기보다는 교회확장에 더 관심이 많으며 실제로 도심의 대부분의 교회의 운영자들은 절대 가난한 자들이 아니다.

부자들이 대부분의 기성교회를 운영(장로등의 직함을 가지고서)하다 보니 목사들의 설교내용이 갈수록 현실을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는 극히 보수적인 얘기만 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부자들은 현실이 그다지 불만스럽지 않기 때문이리라...

물론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현실의 잘못된 점까지 묻어가라는 것은 분명 아니라고 보는 이들이 많음에도 현실의 부조리와  힘없는 이들의 억울함은 안중에도 없이 죽은 뒤의 천국행만 강조하니까 세상과 자꾸 괴리가 생기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바로 한국 기독교회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이들이 부자들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두번째는 기독교신자들의 신앙이 다분히 물질적이고 기복신앙적(개인적 복을 비는 신앙형태)인 면이 크다는 것이다.

이미 종교자본화된 교회에서 목사들은 현실을 무조건 순응하고 긍정하면 할수록 주님의 축복이 온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주입하고 신자들은 기독교회에 와서 십일조를 바치며 하느님께 물질의 번영과 가족의 건강과 같은 개인적인 복만을 기원하고 자족한뒤 교회문을 나서면 사회의 제반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게 기독교를 믿지않는 일반인들에겐 극히 위선적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세번째는 기독교회의 자체유지구조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종교자본화된 한국교회는 교회예산과 지출이 선교와 지역봉사에 쓰여지기보다는 교회의 재산축적이나 자체유지비로 쓰여지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기성교회들은 예산의 30%정도를 목사들의 봉급으로 지출하고 있으며 그외 예산의 80~90%는 자체 소비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한국기독학생연맹)

 

네번째로는 기독교인들의 신앙이 개인화되어가고, 극단적으로 되어간다는 사실이다.

남들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전철이나 거리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 같은 선교구호를 부르짖으며 목청을 높이는 당사자들, 개인적으로는 무척 만족스러울지 모르나 타인에게는 또다른 억지일 수 있고 타종교인들에게는 종교적 이질감과 분노를 일으키며 마음의 상처를 줄수도 있음을 개의치 않는 기독교적 독선과 오만 말이다...

현실에서 수없이 벌어지는 불합리한 일들엔 귀와 입을 봉하고서 죽은 후의 무한한 축복만을 바라보고 믿는 것이 최상의 신앙이고 순교라는 극단적인 신앙자세로는 한국 기독교회에 미래란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무수히 많은 불쌍한 이들은 놓아둔 체 극구 만류하는 위험한 아프간에 가서 물의를 일으키는 일부 기독교인들을 좋게만 볼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것은 아닐까?

최근에 비정규직을 대량해고한 이랜드의 행태를 광신으로 보는 이유도 현실의 부조리와 비정규직의 고통은 놓아둔 체 무조건 긍정적인 자세로 일관해야 기독교인다운 것이라고 믿고서 부당해고와 같은 부조리에 반기를 드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을 사탄시하는 근본주의적인 신앙행태가 무서운 위력을 발휘한 것은 아닐까?..이런 근본주의적 신앙관은  다 한국기독교회의  비뚤어진 구조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반문하고 싶은 것이다.

 

마지막으로기독교인들에게 이 점을 말해주고 싶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던 자들도 유대교 신앙을 철두철미하게 믿었던 유대교 근본주의자들이었다고 말이다...지금의 한국 기독교회가 예수의 이름을 더럽히고 그를 끊임없이 십자가에 못박고 있지는 않은지 다들 반성해보시길 바란다.

 

※참고사항

근본주의 : 1881년 프린스턴대학교의 하지와 워필드가 처음 고안한 "성서의 무오류성"이라는 교리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성서를 현대적인 방법들.. 예를 들면 고고학이나 문헌 비평학과 같은 방법으로 연구하려는 신학자들에게 성서의 권위가 훼손된다고 주장하며

"성서의 무오류성" , "성서의 절대적인 귄위" ,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 "처녀(마리아에 의한) 탄생" , "육체의 완전한 부활"등을 기독교의 근본적 교리로 상정해

현대신학의 자유로운 일체의 해석을 이단으로 단죄했다.(" 다빈치 코드 "라는 영화 상영에 대해 보인 기독교인들의 행태를 기억해 보시라!)

근본주의는 1930년대 반지성주의라는 비판을 받고 프린스턴대등 신학계에서는 퇴조했지만 ,이미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 기독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해방이후 북에서 공산주의에 의해 박해를 받고 남하해 "반공"과 물질적인 성장을 축복으로 규정해 당시의 군사정권과 궤를 같이 했던 이들이 오늘날 한국기독교의 기틀을 잡은 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