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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 뉴스]/사회 비평

눈속에서 폐지수거하는 노부부

by 네 오 2008. 2. 26.

어제는 새 대통령이 취임하는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왠일인지 아침부터 날씨는 그리 좋지 않았고 오후부터는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저녁 뉴스에서는 대설주의보까지 내려졌다고 합니다.

궂은 날씨만큼이나 이상하리만치 착 가라앉은 마음으로 새 대통령의 취임식과 기나긴 연설을 듣고 난 후 점심을 먹고 사업처를 2~3군데 들렀다가 오후 5시경쯤에 사무실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보게 된 사연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눈을 맞으며 폐지를 분리수거하는 노부부를 우연히 만나다

글쓴이가 근무하는 회사에서 한 블럭정도 떨어진 거리에는 식당과 연립주택들이 여럿 모여 있는데 매일 오후 3~5시 사이에 어김없이 누군가가 그곳에 배치된 쓰레기수거함의 폐지들만 골라서 말끔히 거두어 가 버려서 그전부터 자못 궁금했었는데 바로 어제 그 시간대에 그곳을 지나다가 문제의 폐지수거를 하고 있는 장본인을 우연히 만나보게 된 것입니다.

 

글쓴이가 폐지를 수거하는 분들을 가까이에서 뵈니 나이는 대략 70세 안팎으로 보이는 한 쌍의 노부부였는데 오후부터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맞으며 쓰레기 수거함에서 폐지를 꺼내 차곡차곡 정리해서 리어카에 싣고 있었는데 이미 작업을 시작한지 꽤 시간이 되었던 듯 상당히 많은 폐지가 이미 리어카에 쌓여 있었습니다.

 

 <눈을 맞으며 노부부가 폐지를 분리수거하고 있는 모습...할머니가 폐지를 들고 와서 힘겹게 리어카에 올린 후 쏟아지지 않도록 갈무리를 하고 있다.>

 

 <리어카에는 이미 상당한 량의 페지가 이렇게 쌓여 있었다.> 

 

 

 

가만히 그 모습을 보다가 글쓴이는 블로거 기자의식이 발동해서 그 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폐지 분리수거하는 모습 몇 컷을 사진에 담았고 작업중에 몇 마디 질문을 함으로써 그분들의 애환과 함께 지금 우리네 사회를 그들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들어보았습니다.

 

 

다음은 폐지수거를 하시던 할아버지와의 대화내용입니다. 

반더빌트: 할아버지...폐지 1kg당 얼마나 값을 쳐 주나요?

할아버지: 1 kg당 80원을 받지...

반더빌트: 그렇다면 하루에 평균 몇 kg이나 폐지를 모으시나요?

할아버지: 하루에 적을 땐 100 kg정도...많이 모으는 날엔 한 150 kg까지는 모은다고 봐야지...

반더빌트: 그렇다면 하루 폐지수거 최대치인 150 kg으로 잡아봐도 한달 벌이가 36만원 정도밖에는 안되는 겁니까?

( 이 부분에서 글쓴이는 마음이 상당히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하루에 보통 몇 시간이나 일을 하시는데요?

할아버지: 보통 하루에 12~13시간은 일하는데 나이가 들어 뼈가 마디마다  쑤시고 허리가 아파서 폐지수거를 하는 중간마다 20분에 한번은 쉬어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하루 목표량을 채울 수 있지...그래서 이렇게 안사람과 둘이서 작업을 하면서 번갈아 쉬어가며 폐지를 수거하는 거라오...

( 할아버지가 말하는 도중에도 할머니는 연신 폐지를 분리하고 계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폐지 수거도중에 할머니가 수시로 허리를 뒤로 젖히고 몸을 좌우로 돌려서 허리를 풀어준 뒤 다시 허리를 굽히고 작업을 하는 것을 확인했다.

사진속에서 할머니의 머리와 어깨가 이상하게 한쪽으로 치우친 것은 폐지수거 도중 허리를 펴고 몸을 좌우로 뒤트는 중에 촬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엔 정말 민감하고 한편으로는 그분들에게 대단히 결례일수도 있는 질문을 하려고 뜨거운 캔 커피 두개를 사다가 드리면서 조심스럽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반더빌트: 두 분이 연세도 꽤 지긋하신데 이런 힘든 일을 하시는 것 자제분들이 알고 있나요?

그리고 만약 알고 있다면 자제분들은 현재 무슨 일을 하고 계시나요?

할아버지: 아들 놈이 둘 있는데 큰 놈은 외환위기 당시 사업이 실패해서 빚만 왕창 지고 현재 대리운전을 한다오...둘째는 조그마한 중소 휴대폰 조립공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역시 벌이가 시원치 않아서 도저히 부모님 공양을 할 형편이 못되지...그래도 우리는 괜찮으니까 저희들 앞 가림이나 제대로 하고 살았으면 좋으련만...우리는 그래도 그나마 이렇게 해서라도 용돈벌이는 하고 있으니까...또 살아갈 날도 얼마 안 남았고...하지만 그놈들은 앞길이 구만리이고 살날이 더 많은데 정말 걱정이야...

반더빌트: 제가 옆에서 가만히 보니 상당히 숙련된 모습으로 폐지를 수거하시는데 언제부터 이런 일을 시작하셨나요?

할아버지: 벌써 6년째구만...사실 말이 나와서 말이지...새파랗게 젊은 사람들도 일자리가 없어서 죽어나는 판국에 다 죽어가는 나같은 늙은이들을 써 줄데가 이 사회에 얼마나 되겠나..그나마 이 일이라도 할 수 있으니 천만다행이지...그저 바라는 것은 더 이상 몸만 아프지 말고 지금 정도로만 몸이 말을 들었으면 좋겠구만...

반더빌트: 죄송한데요... 그렇다면 할아버지는 지금 상황에 만족하시는 건가요?...  아님 현실적으로 삶이 더 이상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 완전히 체념하신 것인가요?

할아버지: (한동안 말이 없다가) 그나마 이 일도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오...요즘 들어 부쩍 폐지 수거량을 채우기가 힘들어졌는데 여러가지 사정이 있겠지만서도 우리 부부처럼 폐지를 수거해서 용돈벌이를 하는 노인네들이 많이 늘어난게지...노무현이 맨날 경제가 그리 나쁘지 않고 서민들도 견딜만하다고 하던데 물가는 자고새면 오르고 나같이 폐지수거하는 노인네들이 더 많이 눈에 띄는 것을 보면 누가 뭐래도 지난 5년간 서민경제는 점점 안 좋아졌던 거겠지...

 

그렇게 할아버지와의 대화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사업처에서 받아온 서류 뭉치들을 정리한 후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 5년간 노무현 참여정부는 입만 열면 서민을 위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했었고 수치상이나 통계상으로는 분명히 경제지표가 나아지는 듯 한데 우리네 주변에서 실제로 만나게 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하나같이 별로 나아지지 못하거나 오히려 지난 5년전보다 훨씬 삶의 질이 열악해지고 있음을 다시한번 실감했습니다.

 

한마디로 노무현과 그의 추종자들이 입만 열면 노무현 비판자들에게 변명조로 들이대던 거시경제 지표상의 그토록 견실하다는 경제성장의 열매가 전혀 서민들에게 돌아오지 않는 구조적 모순이 어떤 식으로든 지난 5년간 더욱더 가속화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정작 폐지를 수거하시는 노부부를 본 후 더욱더 글쓴이의 가슴을 짓누르는 건 새롭게 취임한 이명박 대통령도 취임 연설내내 서민이나 복지,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말하기보단 경제성장과 시장주의,규제완화,친기업같은 구호에만 신경을 써서 말하고 있는 듯 보이고 그런 대통령 취임연설을 듣는 글쓴이부터도 그런 말들이 가슴속에 깊이 파고들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결론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창 밖에서는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글쓴이는 어릴 적에 눈을 보면 무척이나 즐거워 했었습니다.

아마 온 세상이 하얗게 바뀌고 그 모습이 너무나 선명하고 신비로워 보여서 그랬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한살두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눈이 내리는 것이 순수했었던 어릴 적 그때처럼 마냥 반갑지만은 않게 되었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도 눈이 내릴때면 잠시나마 기분이 좋아질때가 더 많기는 하지만 그 눈이 정말로 온 세상을 하얗게 바꾼 것이 아니라 아주 잠시동안만 더러운 회색빛 도시의 진면목을 감추고 있음을 너무나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눈이 그치고 난 다음 날이면 하얀 색 눈은 회색빛 도시의 탁함을 그대로 받아 회백색의 추한 모습으로 돌변하고 치워버려야 할 천덕꾸러기로 변모해 버립니다.

 

이는 마치 경제성장과 시장주의로 대변되는 장미빛 미래가 모두 하얀 눈처럼 일종의 환상이며 잠시나마 서민들에게 반짝 희망을 줄수는 있으나 실제 우리네 삶이 별로 바뀌지 않는 헛된 구호였음을 깨닫게 되면서 심한 배신감과 분노를 느끼게 되는 이치와 매우 흡사하다고 여겨집니다.

 

 

 

또한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맞으며 폐지를 모으시던 노부부를 떠올리며 이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눈 속에서 폐지를 분리수거하는 노부부의 모습은 마치 70~80년대 고도성장기의 젊은 활력이 넘치던 한국 경제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지금의 한국 경제도 위에 폐지를 수거하시던 할아버지가 언급했듯이 소위 고용없는 성장으로 대변되는 경제적 겨울 한가운데의 시기에 놓여 있으며 하염없이 내리던 눈 속에서 폐지를 수거하던 노부부처럼 이 땅의 사회적 약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농민,장애인,노약자등등의 수 많은 이들이 줄기차게 내리는 눈과 같이...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경제적인 한파속에서 오늘도 자신의 삶을 힘겹게 이어가고 있다는 슬픈 현실을 떠올리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더욱 무겁고 답답해지는 것입니다...

 

 

후기

온 세상을 잠시나마 하얗게 바꾸는 눈이 시작되던 어제부터 새로운 대통령이 이 나라를 책임지고 이끌어갑니다.

부디 새 대통령은 지난 5년간 노무현 참여정부가 했던 것처럼 그럴싸하게 포장된 흰색 눈과 같은 실속없는 정책들과 정치적으로 치밀하게 계산된 소수의 추종자들을 위한 달콤한 립 서비스가 아닌 실제 서민들의 삶에 작지만 진실로 긍정적인 경제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진짜 알짜배기 정책을 하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해서 다시 5년이 지난 뒤 어제의 노무현처럼 청와대를 떠날 때에는 몇몇 소수의 추종자들이 보내주는 극성스러운 느낌의 환호와 아쉬움이 아니라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전국민적인 환호와 잔잔한 아쉬움의 눈물을 이 글을 쓰고 있는 블로거 기자부터 흘릴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간절히 희망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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